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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와 담쟁이가 멋스러운 옹천읍성 성벽길

아이들과 여행

by 내꿈은동네책방오너 2021. 7. 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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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나서,

진해 웅천읍성으로 향했다.

이맘때쯤 진해로 출장을 가면서

이런 햇살과

이런 푸르름과

이런 하늘을 본 적이 있는데

올해도

진해의 여름은 푸르고 선명하다.

이런 나무 터널은

나에게 설렘을 안겨준다.

아직 웅천읍성엔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이곳은 합격이다!

주차장이 너른 편이었다.

대부분의 읍성과 같이 사람은 거의 없다.

읍성은 확실한 언택트 여행지이다!

주차장 끝으로 걸어가니

<해설사의 집>이 있다.

예전 언양읍성에서 마그넷을 얻기 위해 해설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해설사님이 정말 친절하게 읍성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그땐 요청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들은 설명이었지만 좋았기에,

이번엔 우리가 직접 설명을 부탁드렸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건 아니라 그런지,

아니면 아이가 어려서 이 설명을 다 알아들을 수 있을지 고민하시는 듯했지만,

적정선에서 설명을 해주셨다.

진해는 예부터 왜적의 침입 관문이었기에

중요한 군사요충지였으며,

근처에 왜인들의 불법 집단 거류지가 있었다 한다.

왜인들로부터 백성들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조선시대 세종 때 황희 정승의 건의로 웅천읍성을 지었다 한다.

현재 동문을 중심으로 복원이 되어있고,

남문 서문은 흔적이 남아있어 복원이 이루어질 수 있지만,

북문은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도로를 만든다고 덮어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해자와 담쟁이가 멋스러운 옹천읍성 성벽길

이곳은 해자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흔히 볼 수 없는 해자를 구경할 수 있어서 아이들은 매우 신기해하는 눈빛이다.

해자와 담쟁이가 멋스러운 옹천읍성 성벽길

해자

해자는 성벽 주변에 인공적으로 땅을 파서 고랑을 내거나 자연 하천 등의 장애물을 이용하여 성의 방어력을 증진시키는 방어시설의 하나로서 아주 이른 시기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방어시설이다.(중략)

웅천읍성 안내판

해자와 담쟁이가 멋스러운 옹천읍성 성벽길

동문루 쪽으로 걸어가 본다.

날씨가 좋아서 사진 찍을 맛이 났다.

왼쪽으로 가면 치성이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문루가 있다.

 

명문석이 보인다.

읍성을 지을 때 관계자의 이름들이 새겨져있는데,

진주, 창녕, 청도, 합천지역의 사람들이 동원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멀리 치성이 보인다.

문화해설사님이 설명해 주신 내용 중

돌의 색깔이 검은색인 경우 대부분 원래 성벽을 이루던 돌이라고 하고,

밝은 색은 복원 시 새로 사용된 돌이라 한다.

복원이 이루어진 지 제법 시간이 지났고

그 위로 담쟁이덩굴이 자라서

새것과 옛것이 이젠 조화롭게 자리 잡았다.

해자가 있으니, 다리도 있어야겠지?

여기 다리가 있다.

조교!

저 봉을 밀어서 다리를 만들었다가 올리고 했었나 보다.

동문루 오른쪽으로 펼쳐진 성벽이다.

분명 아이들이 저쪽 끝까지 걸어가려 할 테니,

가야 할 길 미리 살펴보기!

문루 앞에는 옹성이 있다.

옹성에 보면 위쪽에 돌출된 돌담이 보인다.

지붕처럼 중간에 튀어나온 돌들..

이것은 "미석"이라고 한다.

정약용이 화성을 과학적으로 축조했다는 사실은 화성 성벽과 여장(성의 담) 사이에 검은색 벽돌이 끼어 있다는 점으로도 알 수 있다.

생김새가 눈썹 같다고 해서 눈썹돌 또는 미석(楣石)이라고 부른다.

미석을 성벽과 여장 사이에 끼워놓은 이유는 물질이 상태가 변화할 때 부피가 변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성벽의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든 채 얼어버리면 얼음의 부피가 팽창하는 힘으로 성벽이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미석을 끼워놓으면 비나 눈이 와도 물이 성벽으로 스며들어 가지 않고 미석을 타고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원 화성 - 첨단 기술로 쌓은 새로운 성 (물리산책, 이종호, 과학창의재단)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고,

황희 정승은 조선 전기 재상이었는데,

정약용이 수원 화성을 쌓을 때 도입했다고 하는 미석은

어떻게 조선 전기에 지어진 웅천읍성에 있을까?

아하!

중간 보수가 이루어졌겠지...

임진왜란도 겪었다 하니,

이후에 계속해서 조금의 보수는 이루어졌을 것이고,

그때 미석이 반영되었나 보다.

그리고 마지막 모습을 토대로 지금 모습으로의 복원이 이루어졌으리라

짐작해본다.

옹성안으로 들어오니,

미석의 모습도 더욱 선명히 보이고,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이는 제법 큰 돌덩이들도 보인다.

성 안쪽은 마을이 있었다.

성문 바로 앞엔 우체국

언제 만들어진 건진 모르겠지만, 문 바로 앞에 딱 좋은 장소에 자리 잡은 듯하다.

해자와 담쟁이가 멋스러운 옹천읍성 성벽길

옹성과 동문루가 함께 보이는 모습이다.

동문루

문루는 성문의 출입통로 상부에 마련된 누가 있는 건물을 말한다.

문루는 성내 외의 출입을 통제하기도 하고, 전투 시에 장수의 지휘소로 이용하는 건물이 되기도 한다.(중략)

웅천읍성 안내판

둥그런 옹성의 모습

근데 여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여장은 성벽 위에 설치하는 낮은 담장을 말하는데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공격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조물이다.

우리가 성을 그릴 때 높이가 높고 낮은 것이 반복되는 모형을 자주 그리는데, 이게 여장이라고 보면 된다.

성벽 위를 걸어본다.

약간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견고하게 만들어졌겠지?

동문루와 옹성의 모습

해자와 담쟁이가 멋스러운 옹천읍성 성벽길

옹성위에서 바라본 동문루의 모습

오는 길에 보았던 동북쪽의 치성으로 가는 길이다.

동북치성

웅천읍성의 치성은 총 6개로 이곳의 치성은 동문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된 적대이다.(중략)

웅천읍성안내판

아들이 수구를 발견했다.

수구

웅천읍성에서 확인되는 수구(성벽에 마련된 배수시설 중 규모가 작은 것)는 동북 벽에 1개소, 남벽에 1개소 2개소가 확인되고 있다. (중략)

수구 내부를 확인한 결과 수구는 내부로 관통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ㄱ자 상으로 굴절된 것으로 현재의 웅천초등학교가 과거에 객사지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객사에 딸려 오수를 방출한 것으로 판단된다.

웅천읍성 안내판

동남치의 모습이다.

성벽을 보다 보니,

성벽이 자꾸만 좋아진다.

해자와 담쟁이가 멋스러운 옹천읍성 성벽길

둥그런 옹성도 멋지지만,

각져서 튀어나온 치성도 멋지다.

이렇게 멋진 치성이 잘 보이는 곳에 예쁜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작업실도 보였는데,

동문루 보다 이런 치성이 보이는 측면 성벽이 더 운치 있어 보인다.

결국 동남치까지 다 둘러보고 가는 아들램

해자와 담쟁이가 멋스러운 옹천읍성 성벽길걷기 어떠셨나요?

웅천읍성은 웅천역사 둘레길 중 한 코스였다.

다음에 아이들이 좀 더 잘 걸을 때,

그리고 날이 좀 더 선선할 때 코스로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해자와 담쟁이가 멋스러운 옹천읍성 성벽길 꼭 한번 걸어보시죠!

웅천읍성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 3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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