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랑전설 속 영남루 달구경

아이들과 여행

by 내꿈은동네책방오너 2021. 6. 25. 09:34

본문

아버지의 고향이다.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밀양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그래서 아빠와 주말이면 자주 시골에 놀러 갔다.

모내기하러 갔을 때

책에서만 보던 걸 내가 해볼 수 있어서 얼마나 신기했던지...

그중 선명한 기억은

할아버지 종아리에 거머리가 붙어 있고,

(거의 거머리의 반이 할아버지 종아리에 박혀있었다)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데,

할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거머리를 쑥~ 빼내던 기억...

나는 그 이후로 한동안 물웅덩이를 들어가지 못했다.

아랑전설 속 영남루 달구경

염소 풀 먹이러 들판에도 끌고 나가본 적도 있다.

아빠 염소는 아빠가 끌고, 난 엄마 염소를 끌었다.

엄마 염소의 단단한 뿔이 겁이 나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빠의 표정이 밝아 보여서 괜찮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엄마 염소를 끌고 몇 걸음 걸어가니,

마당에 뛰놀던 새끼 염소들이 일제히 나를 따라왔다.

풀이 좋은 곳에 들어가니,

한 발씩 디딜 때마다 엄청 많은 메뚜기들이 폴짝거리며 뛰어나왔었다.

하루는 동네잔치였는지,

냇가에서 아저씨들이 모여 염소를 잡던 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보지 말라 하셨지만,

보지 말라 하면 더 보고 싶은 법...

그 사이를 비집고 봤더니,

염소 몸 안에는 온통 똥뿐이었다.

그 길로 "염소=똥"

위와 창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니,

풀에서 동글동글 검은 똥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에 가는 걸 좀 지겨워하자.

아빠는 나를 영남루에 데려가 주셨다.

아랑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아랑은 밀양부사의 딸이었는데,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모와 관아의 심부름꾼 하나가 일을 꾸며

밤에 달구경 나온 아랑을 욕보이려 했다

그리고 반항하는 아랑을 칼로 찔러 죽인 후 대나무 숲에 버렸다.

혹시 여기가 아랑이 버려졌던 대나무숲?! 후덜덜...

 

부사는 아랑이 외간 남자와 내통하다 도망을 간 것으로 여기고 벼슬을 사직하였는데,

이 이후로 밀양에서는 신임 부사마다 부임하는 첫날밤에 죽어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다른 포스가 느껴지는 분이 자원하여 밀양부사로 오게 되고,

부임 첫날밤 아랑의 원혼에게서 억울한 죽음을 들은 그는 원한을 풀어준 뒤

아랑의 주검을 찾아 장사를 지냈다 한다.

그리고 그 뒤로는 원혼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다.

어릴 때 집에 있던 동화책에서 본 내용이었다.

머리 풀고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과 놀라는 사또가 그려진 그림이 무서웠던...

책에서 본 이야기라서 아빠가 지어낸 거라 생각했었는데,

영남루의 아랑각에 있는 아랑의 그림을 보고 아빠 말을 믿었던 기억이 난다.

그 아랑이 달구경을 하던 달들이 영남루에 떨어졌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다.

일전에 아이들과 함께 밀양 읍성에 갔을 때,

등불축제를 한다며, 내려다보았었는데,

오늘 시골에 갔다 오는 길에 아이들을 위해 들러보았다.

시간이 제법 늦긴 했지만,

사실은 내가 보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아랑 전설을 들려주고 싶었는데,

그 이야기 듣고 나면 분명 아이들이

밤에 불을 못 끄게 할 것 같아서 좀 참고,

블로그에 풀어본다.

아랑전설 속 영남루 달구경

시간이 늦어서 영남루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밖에서 지구에 떨어진 달 구경을 했다.

아이들에게 전설을 이야기해 주면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원하는 색깔의 달을 찾아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랑전설 속 영남루 달구경

요즘 내가 자주 하는 일은

아주 당연히 오고 가는 길에도...

볼만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들러서

여행하듯 그곳을 즐겨보는 거다.

꼭 새로운 곳만 여행인가?

꼭 계획을 세우고 기대하며 가는 곳이 여행인가?

늘 다니던 곳이 새롭게 보이고,

또 새로운 것을 오늘은 하나 더 만들어 보인다고 하면,

잠시 그곳에서 멈춤 하여

산책하고 여행하듯 즐기는 것

그게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던 곳에

이제는 아이들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시고,

그곳을 지나가는 길에 있는

그 지역의 유적지...

언제쯤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낮에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

그땐 이미 다 아는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지만,

밤마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 귀신 이야기를 해주는 건 내 무덤 파는 일이니..

이날은 일요일 밤.

다들 월요병에 시달릴 때쯤

부럽게도 나는 월요병이 없어졌어요!!를 외치던 날

밤에 이렇게 달 구경 오니, 참 좋다!

아랑전설 속 영남루 달구경

 

영남루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 영남루

아랑각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 영남루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