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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역사여행 언양읍성

아이들과 여행

by 내꿈은동네책방오너 2021. 5. 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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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 읍성을 찾게 될 줄은 몰랐다.

큰 아이가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동래산성과 부산진성을 꼭 가보고 싶다 하여 데리고 갔다가.

 

최근엔 언양 쪽 박물관을 많이 관람하다 보니,

관광 지도를 본 것인지,

이정표를 본 것인지,

언양읍성엘 가야 한다고 난리다.

 

마침 우리가 하고 있던 마그네틱 모으기 투어에 언양 읍성이 있어서

흐린 일요일 오후에 산책 겸 해서 가보았다.

 

주차는 언양읍성 안내소에 적당한 주차공간이 있었고,

이 안내소에서 마그네틱을 얻을 수 있기에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과 역사여행 언양읍성

 

안내소에 들어가니 직원분이 두 분 계셨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니

'

언양읍성에 대한 영상을 보겠냐 물으신다.

그래서 넷이서 언양읍성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그냥 쓱 둘러보고 나오게 될 것이,

영상을 보고 둘러보면 뭔가 스토리가 생겨서

더 꼼꼼히 보게 되고,

그 시대를 한번 상상해 보기도 하게 되는 것 같아서 좋다.

 

아이들과 역사여행 언양읍성

종묘와 사직단이 있는 곳을 ‘도’(都)라고 한다면,

이것이 없는 곳을 ‘읍’(邑)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왕이 거주하는 수도 서울의 둘레에 쌓은 성이 ‘도성’,

왕이 아닌 군·현의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것이 ‘읍성’이다.

 

우리나라의 읍성은 조선시대에 와서 활발하게 축조되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행정구역 수가 330곳,

읍성이 축조된 곳은 190군데에 이른다.

 

읍성은 자연 지세에 맞게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절충한

평산성 또는 평지성으로 축조되었다.

평지성은 지형에 따라 네모꼴 또는 둥근 꼴로 축조되었는데 초기에는 네모꼴이,

시대가 지나면서 둥근 꼴이 더 많이 지어졌다.

 

성안에는 관아와 객사, 향교 같은 관공서를 두고

반드시 우물이나 연못 같은 시설을 마련하였다.

평상시에는 행정적인 기능을 하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군사적인 기능을 하였던 것이다.

 

읍성 가운데는 낙안읍성, 고창읍성, 해미읍성, 남도석성 등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언양 읍소재지인 서부리의 언양읍성(사적 제153호) 또한

성벽이 비교적 잘 보존, 복원돼 있다.

경남지역에 남아 있는 읍성 가운데서는 그 모양새를 가장 잘 갖추고 있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14 - 경남, 2002. 4. 8., 한국문화유산답사회, 김효형, 박종분, 김성철, 유홍준, 최세정, 정용기

 

 

 

영상이 끝나고, 언양읍성 모형으로는

큰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신다.

 

읍성을 왜 지어야 했는지,

그리고 읍성의 부분 부분을 튀어나오게 짓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큰 아이는 열심히 대답을 해가며, 설명을 열심히 들었다.

안 그래도 '성'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더 눈을 반짝거리며 언양읍성을 둘러보게 했다.

 

언양읍성은 조선시대에 <여지도>에서 언양읍성이 소개된 것으로 보아

이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언양읍성 안내소에서 가까운 곳은 북문이다.

성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문인 영화루가 나온다.

 

아이들과 역사여행 언양읍성

이렇게 성벽의 흔적들이 보인다.

언양읍성은 큰 돌을 굴러다가 쌓고 사이사이 빈틈을 작은 돌로 매우는 식으로 지어져서

아직까지 그 형태가 잘 보존된 편이라고 한다.

북문은 <언양읍지>에 계건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웅성과 해자를 갖추고 있다. 이런 구조로 미루어 언양읍성이 백성 보호와 군사적 방어에 적합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언양군지도>에는 북문 안쪽에 여러 채의 가옥이 그려져 있는데, 성 안에 백성들이 모여 살고 있는 모습으로 추정된다....(중략)

- 언양읍성 북문 안내판

 

 

북문에서 남문으로 가로질러 가는 길이다.

벼가 심어져있고, 관리가 되지 않는 논 밭도 보였다.

길에는 이렇게 귀여운 성문을 박아두었다.

 

걷고 또 걸으니, 마을도 나온다.

사람이 사는 곳이 맞나 어슬렁거리며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는데,

사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보인다.

 

조금 지칠 때쯤 남문이 나온다.

너무 신나서 뛰어가는 아들

아이들과 역사여행 언양읍성

재건한 것이지만, 돌로 짜 맞추어 이렇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이들과 역사여행 언양읍성

언양읍성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들은 아주 신이 났다.

문 앞을 반달 보양으로 쭉 빼놓고 지어서, 성문을 정면에서 공격하기 어렵도록 만들어 두었다.

전쟁 시 군사적인 요충지로 사용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언양읍성 남문은 성곽의 정문에 해당하며,
고지도를 보면 이 문 인근에는 많은 관아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가산집>에 수록된 시문에는

"남문을 개축하여 진남루에서 영화루로 되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이로 미루어 언양읍성 남문은 중수 이후에 명칭이 바뀐 사실을 알 수 있다.

...(중략) 2013년에 중건...(중략)

-언양읍성 남문 안내판

 

성벽을 따라 걸으며,

그 옛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것일까...

언양읍성 남문의 모형에 대한 설명도 꼼꼼히 읽어보고

언양읍성은 고려 공양왕 2년 1390년에 토성으로 처음 만들어졌으며,

효과적인 주민보호와 군사적 방어력을 높이기 위하여 조선 연산군 6년 1500년에 석성으로 새로 지어졌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광해군 4년 1612년에 재정비하였으나

잦은 재해로 피해를 입었고, 특히 근현대기 남천의 제방 축조를 비롯한 여러 공사에 성에 있는 돌을 가져다 써서 훼손이 더 심해졌다...(중략)

-언양읍성 남문 영화루 안내판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참 많이도 찍었구나,

그래도 성벽이 참 멋지게 사진에 나온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이날은 날씨가 제법 쌀쌀하여,

딸과 나는 얼른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아들램은 꼭 이 성벽을 따라 다 둘러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아빠와 아들이 사이좋게 전체를 모두 둘러보고 나서야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점점 '성'의 박사가 되어가고 있는 아들...

오늘도 지도를 보며 성을 찾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수원 화성을 매일 부르짖고 있다.

 

서생포 왜성을 가기 전 언양읍성을 먼저 방문하였는데,

언양읍성을 포스팅하다 보니,

그때 만든 와플 블록이 언양읍성의 모형과 너무나 흡사하여

그 사진을 한 번 더 올려본다.

 

이 모형을 따라 만든 것 같다.

 

* 이 글은 오늘도 읍성을 검색하고 있는 아들 덕분에 우리나라 모든 성을 다 가봐야 하는 건가...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 미책오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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