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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탐방 부산진성

아이들과 여행

by 내꿈은동네책방오너 내꿈은동네책방오너 2021. 4.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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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역사책에 빠졌다.

역사에서는 전쟁 이야기를 중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다.

인류가 살아온 날을 10일이라 하면 그중 7일은 전쟁을 했다고 책에서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전쟁에 자주 등장하는 성!

진주성, 동래산성, 부산진성, 수원화성...

 

아이들에게 주말에 뭐 할까? 물으면

한동안 줄기차게 나왔던 대답은

"부산진성"이었다.

 

가까우니 한번 가보자 해놓고,

가까우니 더 안 가게 된다.

우리 동네 탐방 부산진성

 

아이가 부산진성을 알게 된 건

이순신 장군 책을 읽고 난 뒤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일본이 침략해 왔을 때,

부산진성이 함락되고 동래산성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해대며

부산진성을 가고 싶어 했다.

 

큰 아이의 소원이 부산진성을 가보는 일인데

그 소원 들어주러 오늘 떠나본다.

 

부산진성 서문(금루관)

 

 

큰 아이 소원 성취하는 순간!

 

성 옆에서 안내도를 보며,

코스를 짜본다.

 

우리 동네 탐방 부산진성

우리의 위치는 1번 서문(금루관)이다.

 

왼쪽으로 쭉~ 돌아야 한단다.

수시로 지도를 보며,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단순한 일이지만, 아이는 정말 좋아한다.

 

< 부산진성 >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7호

 

부산진은 조선 태종 7년(1407) 우리나라 동남 해안을 방어하기 위하여 경상좌도 수군 사령부가 주둔하던 군사적 요충지로, 성종 21년(1490)에는 많은 병선과 수군, 그리고 물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중산 아래 부산진성을 쌓았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장수 모리 테루모토가 부산진성을 파괴하고 중산 정상에 본성인 중산 왜성을.... (중략)

 

부산진성은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지킨 선열들과 조선 수군의 5백 년 역사를 고이 간직한 곳이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쌓은 왜성과 이후 왜성을 이용해 조선 후기에 쌓은 수군 진성을 연구할 수 있어 자료사적 가치 또한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된다.

 

부산진성 안내판

 

 

 

부산진성 서문 성곽 우주석

 

 

 

부산진성 서문 성곽 우주석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9호

우주석은 집이나 성의 모퉁이 경계에 세운 돌기둥을 말한다. 부산진성 서문 성곽 우주석은 임진왜란 이후 옮겨 이진한 부산진성의 서문 바깥쪽의 좌우 모퉁이에 경사지게 세웠던 것으로, 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왜적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중략)

동쪽 돌기둥에는 '이곳은 나라의 목에 해당하는 남쪽 국경이다.'라는 뜻의 '남요인후'
서쪽 돌기둥에는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와 같다.'라는 뜻의 '서문쇄약'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중략)

부산진성 안내판

 

우주석이라고 하니,

아이들은 우주에서 날아온 돌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도 왜 우주석인지 궁금했는데,

같이 배우는구나.

 

모퉁이 경계에 우주석을 세워놓고

성벽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좁은 골목길 모퉁이에 있는 집

담벼락이 어떤 이동 수단이 와서 박을까 봐

큰 돌을 시멘트로 박아 놓은 것도

우주석?

 

우리 동네 탐방 부산진성

먼저 왼쪽 진남대로 가본다.

 

귀여운 고양이라며,

딸이 꼭 찍어야 한다며 딸이 아주 난리 법석이다.

 

앞서가는 오빠는 얼른 오라고 난리고...

 

최영 장군 비각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이거 보고 정말 빵!

터짐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최영 장군의 말씀 받들자..."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나오는 그 청렴한 최영 장군의 말씀이다.

한동안 질리도록 들었던 그 가사..

지금부터 부산진성을 나올 때까지 이 노래는 계속되었다.

 

현판은 황금색이다.

아니,

최영 장군의 말씀 받들어 현판은 돌이다.

 

 

 

예쁜 돌담길을 따라 걸어간다.

 

나무 사이로 성벽도 보인다.

우리 동네 탐방 부산진성

 

두 번째 목적지 진남대로 향하는 길이다.

계단을 올라 올라...

 

천장군 기념비

 

 

 

명나라 장수였던 천만리,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서 싸우고 공을 세웠고,

이후 조선에 머물러 귀화한 장군 기념비이다.

진남대

장군의 지휘소

 

진남대

장군의 지휘소였던 진남대의 '진남'이란 부산진성 남문의 이름이다.
부산진성 안내판

 

 

 

등산하고 정상에 올라온 자들이 취하는 듯한 포즈네!

 

목련이 활짝 피었구나!

너는 잎이 두꺼워서 이른 봄에 필수 있는 걸까...

3월 중순인데, 참 빨리도 피었다.

 

목련차 한 잔이 생각난다.

 

큰아이는 시간을 오래 주지 않는다.

엄마 다리 후덜덜...

 

우리 동네 탐방 부산진성

영가대 가기 전, 동문을 먼저 간다.

 

 

동문(진동문)

 

 

 

마지막 동문이다.

북문은 긴 계단을 내려가야 하고,

별도 문이 따로 있는 것 같지 않아서 패스했다.

영가대
영가대는 일본에 파견되었던 통신사행과 관련 깊은 부산의 명소이다.
1614년(광해군 6)에 부산진성 근처 해안이 얕고 좁아 새로 선착장을 만들었는데, 이때 바다에서 퍼올린 흙이 쌓여 작은 언덕이 생겼는데, 이곳에 나무를 심고 정자를 지었다.
...(중략)
통신사행은 이곳에서 출발하고 돌아왔으며 이곳에서 안전 항해와 무사 귀환을 비는 해신제를 올렸다... (중략)

부산진성 안내판

 

 

 

경상도 순찰사 권반의 고향 이름을 따서 영가를 따서 영가대라 이름을 지었는데,

이것은 복원된 곳이었다.

 

안내판 설명을 열심히 보던 큰아이는

결심한다.

 

부산진시장 뒤 위치한 원래 영가대가 있던 자리를 가봐야 한다고...

 

조선통신사 역사관

코로나로 문을 닫았다.

 

코로나로 문을 닫았다.

운영을 안 하니, 이렇게 밖에서 한 컷 찍을 수밖에...

 

그리고 모두의 건강을 위해

지압판 위를 걸었다.

 

점심때 먹은 음식이 시원하게 소화되는 느낌이다.

좋은 건 다 같이 해야지...

 

부산진성은

그냥 담벼락에 문 하나 정도만 있을 거라 생각했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한 번도 가볼 생각을 안 했던 곳

 

아들 덕에 방문했는데,

제법 둘러볼만했던 것 같다.

 

오후 한나절 가족과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파괴되었다가,

일본에 의해 지어졌다가

또 수군의 진으로 사용되었다가

일제 강점기에는 철거되었고

1974년 다시 다시 복원되었다.

 

부산진성 하나가 역사다.

무너졌다 세워졌다를 반복하는...

그리고 지금은 어르신들의

산책로와 건강을 챙겨주는 공원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부산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와볼 만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일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영가대 본 터를 찾아 떠난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볼거리들도 발견하며

우리 고장 투어 내일 계속 이어간다!

 

* 이 글은 아들램가이드님의 계획하에 우리 고장 투어를 하고 있는 미책오가 쓴 글입니다.

여러분의 댓글과 공감은 큰 힘이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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