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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와 나> 감정적인 말 한마디 이후...

엄마가 읽는 책

by 내꿈은동네책방오너 2021. 9. 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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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의 가장 뒤에 수록된 단편소설이에요.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네요.

주인공의 아내는 어릴 때 집이 어려워 엄마의 친구네 집 부부에게 맡겨졌다고 해요.

그곳에서 아내는 정서적으로 가장 풍족한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 TheVirtualDenise, 출처 Pixabay

 

아내가 다시 부모님의 곁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의 친구네 부부는 서운함을 채우기 위해 남자아이를 입양해서 키웠다고 해요.

아내보다는 나이가 많은 오빠였는데, 좋은 아들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분들께 연락이 옵니다. 아들 내외는 이혼을 했고, 아들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손녀를 좀 맡아달라고요.

아내는 어릴 때 도움을 받고 사랑을 듬뿍 받은 분들이라, 그 부탁을 받아들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도 나도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의 일인지 잘 몰랐던 것이 맞았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랬다.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맞이한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어떤 시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잘 몰랐던 것이 맞았다.

그건 아이들을 아무리 많이 키우고 있다고 해도 저절로 알 수 없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세상에 예상 가능한 아이란 없는 법이니까......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_이기호 지음> 중 <한정희와 나> 중에서...

한 명의 아이를 맡는다는 일이 어떤 일일지 상상이 되지 않아요.

"세상에 예상 가능한 아이란 없는 법이니까..."

딱 와닿았어요. 내 아이를 키우면서도 여러 번 제가 시험에 들어요.

그리고 나의 바람직하지 못한 대처에 후회하기도 하고 아이에게 사과하는 일도 발생해요.

하지만, 제가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아이와, 잠시 맡아주는 아이는 다른 일이지요.

내 아이 하듯 엄격히 하면, 그 아이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고, 그렇다고 우리 가정에서 있는 규칙 같은 것들을 어느 선까지 지킬 것을 요구해야 하는지...

하여간 정말 복잡한 일입니다.

그나마 예상 가능한 경우라면 좋겠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늘 그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참 많잖아요.

© kellysikkema, 출처 Unsplash

 

집에 맞이하게 된 여자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한정희예요.

'나'는 정희와 잘 지내기 위해서 가끔 따로 불러 맛있는 것을 사주기도 하면서 특별히 신경을 썼고, 그럭저럭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전화가 와요. 학폭위가 열릴 것이라며... 정희가 주도하여 친구를 따돌렸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작가로 십오 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나는 다른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또 써왔다. 어수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쓸 때도 있었고,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썼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이 쓰고자 했던 것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걸 쓰지 않는다면 작가가 또 무엇을 쓴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런 소설들을 되풀이해서 읽었으며, 주변에 널려 있는 제각각의 고통에 대해서, 그 무게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하고자 노력했다. 그걸 쓰는 과정은 단 한 번도 즐겁지 않았다. 고통에 대해서 쓰는 시간들이었으니까......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_이기호 지음> 중 <한정희와 나> 중에서...

'나'는 피해를 당한 아이의 집을 찾아가고, 부모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마음이 무겁죠.

평소 '나'는 작가로 일하며, 사람들의 고통과 무게에 대해서 진중하게 고민해온 사람이라, 자신에 대한 도덕적 잣대가 높은 편인 것 같아요.

현재 자기가 임시 보호자로 있는 정희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정희의 모습은 잘못을 깨닫기는커녕 예전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학폭위는 어느 잘나가는 부모가 그쪽으로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서면 사과' 정도로 마무리가 됩니다.

이 일에 대해 정희는 자신의 잘못해 대해 뉘우치기는커녕, 아무것도 아니란 식으로 이야기하죠.

심지어 그 서면사과도 '나'에게 써달라고 합니다.

© Free-Photos, 출처 Pixabay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순간 폭발하고 말았다.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들과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아이에게 하고 말았다. 말을 하는 도중에도 나는 내가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너 정말 나쁜 아이구나. 어린 게 염치도 없이......"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_이기호 지음> 중 <한정희와 나> 중에서...

분명 무거운 일입니다.

아이에게도 이 일은 심각한 일임을 알려야 합니다.

내 아이라면 분명 혼내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하고 사건의 심각성을 알렸을 겁니다.

하지만, 잠시 아이를 맡고 있는 입장에선 여러 가지가 좀 조심스럽겠죠.

거기다 자본주의의 힘으로 피해자 학생의 쌍방 과실로 학폭위가 마무리된 것도 마음이 무거워요.

그 덕에 정희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생각했던 게 마치 정답이었던 것 마냥 이야기하며 '나'에게 사과문도 써달라고 하니, 꼭지가 열릴 법도 하죠.

근데, 정희는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둘러 표현해야 하죠. 꼭지가 열린 '나'는 아이에게 못된 말을 하고 맙니다.

결국 정희는 집을 나가고 할머니 집에 있더라는 연락을 받게 되죠.

© christnerfurt, 출처 Unsplash

 

'나'는 자신에 대한 도덕적 잣대가 높은 편인데, 잘못을 저지른 아이지만 미성년자에게 준비되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으니, 스스로가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싶네요.

맘고생은 맘 고생대로 하고, 잘못 튀어나온 말 한마디 때문에 스스로를 많이 괴롭히고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후로도 아내와 정희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는 하지 못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 올 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겠죠?

하지만, 저를 포함하여 이것저것 미리 예상하고 따져가며 복잡한 일에 휘말리진 않을까 걱정하고 계산하고 난 뒤 다음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는 옳은 일을 쫒기 보다는 최소한으로 나쁘지만 말자... 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건 아니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저자: 이기호. 출판: 문학동네발매201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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