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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준 소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중에서 <안부>

엄마가 읽는 책

by 내꿈은동네책방오너 2021. 11. 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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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라는 제목

빨간색으로 그려진 두 명이 싸우고 있는 모습이에요.

아무래도 그들은 제목에 기인하여보면, 혈육인 것 같아요.

혈육.

몸과 피를 나누고 섞여있는 아주 사람인데, 그 누구도 서로를 선택하지는 못했어요.

더 나아가서, 우린 이 나라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나라를 선택하지는 않았죠.

자식을 낳은 부모가 책임을 지고 아이를 키우지 못해서 일어난 일들,

그리고 국가에서 보호해 주지 않고 버려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져있어요.

© rawdyl, 출처 Unsplash

 

나는 겪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어쩌다 선택돼 겪게 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들의 삶을 들여다봐요.

보는 동안 마음이 편하진 않아요.

눈물도 나지만,

그래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스스로가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주어지게 된 삶을...

오늘은 그중 <안부>는 뉴스에서 종종 듣는 이야기 입니다.

가혹행위로 소중한 목숨을 잃은 어린 군인들의 이야기...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지만 우린 또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느라, 이내 잊어버리고 맙니다.

무엇보다 힘든 건 많은 사람들이 아들의 일을 잊어가는 것이고,

든든하게 우리를 지켜줄 거라 생각했던, 국가는 아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은폐하죠.

엄마는 쉬이 잠들지도 못합니다.

차가운 아들의 몸은 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마지막 증거이기에 장례를 치르지도 못합니다.

© kunjparekh, 출처 Unsplash

 

누가 봐도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일에, 나는 매달려야 할까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일이니, 나도 이만 포기해야 할까요?

하지만, 그게 내 자식의 일인데, 내 삶을 다 받쳐서 매달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책에서는 엄마의 일상들이 나오는데, 그러다 종종 나오는 과거의 이야기들은 그 일상이 과거인지 현재인지 구분이 안됩니다. 엄마에겐 시간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엄마가 겪은 일은 시간이 약 이지 않나 봅니다.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서 엄마의 마음은 조금이라도 치유되지도 녹슬지도 않나 봅니다.

어느 날 뉴스에서 접하게 된 또다시 일어난 비슷한 사고, 그리고 그 아들의 엄마를 만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겪은 엄마는 모두가 수축된 모습입니다.

말라비틀어진 고목나무처럼 건드리면 바스러질 것 같고, 위태위태해요.

정용준 소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중에서 <안부>

이제까지 손끝을 통해 그런 것을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마치 손끝에 귀가 달린 것처럼 유리병이 산산조각 나 깨지는 것 같은 강한 파열음이 들렸다.

이윽고 그녀는 괴음을 내며 울기 시작했다.

정용준 소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중에서 <안부>

엄마로서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내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슬픔은 경험하고 싶지 않네요.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지만, 이 문구에서 그만 저는 눈물이 팡! 하고 터지고 말았어요.

이 엄마들은 서로의 아들 자랑을 합니다.

예전에 본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가 생각났어요.

병원에서 치료받던 아이를 잃은 엄마가 계속해서 아이를 치료했던 의료진들을 찾아오는 일...

의료진들은 엄마가 의료사고를 의심하는 건 아닌지 불편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죠.

아이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그 아이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싶었던 것을요.

이 이야기의 제목이 <안부>인 것은,

자식을 잃은 어미가 남은 생을 살아내는 일이 어떤지 묻지 말고, 소중한 아들을 기억해 주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용준 소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중에서 <안부>

나도 저들처럼 그렇게 잘 살고 싶다.

하지만 내 손목과 발등엔 오래전부터 큰 못이 박혀 있다.

내려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 손과 발에 못을 박아 넣은 자가 이 못을 빼주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기다려야 한다.

이 나무가 썩어 쓰러지거나 아니면 내가 죽거나

정용준 소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중에서 <안부>

어떤 소중한 것을 지키느라,

청년의 목숨과 그를 잃은 어미를 외면하는 걸까요.

사는 게 죽는 것보다 힘든 그녀의 남은 삶에서, 과연 누가 그녀의 못을 빼줄 수 있을지,

끝나지 않은 소설의 끝에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고의 전말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책임져야 할 누군가 나타나더라도

어미는 이제 그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저자: 정용준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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